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렝고 전투 (문단 편집) == 전개 == 나폴레옹의 계획은 [[앙드레 마세나|마세나]]가 [[제노바]]에서 멜라스 장군의 군대에 저항하는 사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 [[황제군|오스트리아군]]의 뒤를 치는 것이었으나, 1800년 6월 4일, 마세나는 항복했고, 이제 멜라스는 나폴레옹에 대항해 군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6월 9일 나폴레옹의 선봉을 지휘하던 [[장 란|란]]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몬테벨로에서 오스트리아군의 분견대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나폴레옹이 이 시점에서 가장 걱정한건 오스트리아군과의 정면승부가 아닌 멜라스가 군대를 제노바로 후퇴시킨 뒤 제노바를 요새화하는 것이었다. 과연 멜라스와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군 앞에 단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고 이에 나폴레옹은 멜라스가 제노바로 후퇴하고 있다고 판단, 드제와 부뎃에게 각자 한개 사단을 맡기고 [[클로드 빅토르|클로드빅토르 페랭]]의 부대를 지원하는 동시에 제노바를 차단해 궁극적으로는 오스트리아군을 포위섬멸하기 위해 그의 소중한 병력을 분산 사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멜라스의 함정이었다. 부뎃과 드제의 병력이 출발하자 갑자기 튀어나온 멜라스가 프랑스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미 전투는 시작부터 압도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군에겐 대포가 무려 100문이나 있었던 반면 나폴레옹에겐 고작 24문뿐이었다.] 또한 나폴레옹이 받은 쇼크 또한 컸는데 과거 본인이 지휘했던 1차 이탈리아 원정 당시 자신이 오스트리아의 병력이 분산된 틈을 타 분쇄하던 기술을 구사했는데 자신이 반대로 분산된 상태로 분쇄당하는 처지에 놓인 것. 다만 '나폴레옹이 아무것도 못했고, 프랑스군은 드제의 병력이 올 때까지 속절없이 밀렸다'라는 세간의 인식은 매우 왜곡된 것이다. 나폴레옹의 본대는 드제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6시간 이상을 비교적 적은 수의 사망자와 포로를 내어주며 저항했다. 사실 오스트리아군이 약 3만여명, 나폴레옹의 본대가 2만2천명인데 비해 드제의 사단은 6천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본대 없이 드제의 병력만으로 역전할 수 있는 상황이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늦은 오후 무렵에는 프랑스군은 방어에 유리했던 지점들을 내주고, 3km 후방에 위치한 마을까지 밀려났으며, 프랑스의 주력 예비대였던 통령 근위대 역시 오스트리아 기병대에 기습을 당해 와해되었다. 프랑스군의 패배가 유력해지자, 오스트리아군 총지휘관 멜라스가 지휘권을 참모장에게 넘겨주고 전장을 떠날 정도였다.[* 멜라스는 가벼운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그렇게 혁명 프랑스가 망하기 직전에 몰린 그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